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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한국 민주주의의 비용
기사입력 2013.03.06 17:35:38 | 최종수정 2013.03.06 17: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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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출범조차 못하는 원인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정부조직법이란 존재가 새 정부 출발을 가로막는다면 그런 법이 왜 필요할까. 프랑스처럼 당선자가 알아서 정부조직을 고쳐 국정을 하게끔 하고 결과도 책임지게 하면 안 될까. 불행히도 한국 헌법에 정부조직 개편은 법률로 정하라고 위임해 놓았다. 그 취지는 함부로 조직 개편을 하지 말고 정부조직 원형을 가급적 건드리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도 미래창조부 같은 걸 만들지 말고 차라리 그냥 출항했더라면….

이번엔 김종훈을 낙마시킨 청문회다. 미국에만 있는 청문회를 한국이 도입한 것은 잘한 일일까. 그 취지는 능력도 있으면서 도덕적으로 깨끗한 리더를 뽑아 쓰자는 것일 게다. 매우 좋다. 그런데 지금 청문회를 받아야 하는 능력 있는 장관 후보가 고문형틀을 갖춰놓은 화형(火刑)장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기피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선거에서 진 세력의 분풀이 수단으로 돼버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장면에서 "민주주의의 숨통을 가장 확실하게 끊어놓는 방법은 누구나 정치에 참여케 하는 것"이라는 버나드 쇼의 독설이 왜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국회의원들은 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에게 5ㆍ16 쿠데타, 유신헌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마치 두 살배기 어린애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 것만큼 유치하다. 당한 측은 훗날 입장이 바뀌면 복수를 벼를 것이다.

그 사이 국민만 죽어난다. 세상이 좀 더 나아진다는 공약을 믿고 대통령을 찍어줬는데 풀리는 일이 없다. 세계인들은 한국의 의사결정 능력이 상당한 줄 알았는데 잘못 봤나?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청문회, 정부조직 개편 절차가 한국 민주주의에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청구한다면 좀 줄일 방안은 없을까. 물론 단번에 폐지해 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운용상 개선책을 찾아보자는 거다. 너무 좋은 제도는 실용성은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세계서 가장 민주적인 제도가 잘 갖춰졌다는 인도를 보라. 그냥 축 늘어져 있다. 한국 국회는 몸싸움 추태를 막는 묘수라며 국회선진화법 장치를 마련했는데 국회 기능을 완전 망가뜨리고 말았다. 이번 정부조직법도 종전처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가능했다면 진즉 풀렸을 거다. 유권자 51.6%가 찍어 새 대통령이 나왔으니 야당도 결코 반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선진화법이 족쇄가 되고 말았다. "아차, 이 법이 잘못됐구나!"라고 깨닫지만 이 법을 재개정하려면 국회의원 18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니 퇴로조차 막혔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 지연으로 한국은 벌써 수조(兆) 원 이상 비용을 치렀다. 새 정부가 순탄하게 출발해 부동산, 가계부채 대책을 내고 실행했더라면 실물경제에 온기가 퍼졌을 터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묘사했듯 불황은 서민층에 더 모질다. 2008년 전대미문의 위기를 당해본 후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세계적 성찰이 있었다. 이언 브레머 같은 전문가들이 찾아낸 해법은 `정부는 현명한 규제를 하라. 단 성장의 열쇠는 민간의 자율에서 찾아내라`는 두 가지 결론이었다. 현명한 규제에는 비용청구를 과다하게 하는 국가거버넌스도 고치라는 경고가 담겨 있다. 5년 후, 10년 후에도 정권 출범 때마다 이런 홍역을 치를 것인가.

이제 한국 민주주의 비용을 극소화하고 생산성을 높일 장치를 찾아야 한다. 우선 정부 조직은 가급적 고치지 않고 넘어가게 여야 합의로 정형화된 정부의 틀을 마련하면 좋겠다. 정부 조직이 좋다고 일 잘한 정부가 있단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장관 후보의 추천 불가 사유, 야당이 물고 늘어서는 안 될 금기사항 등에 대해서도 치밀한 열거조항이 필요하다고 본다. 제2, 제3의 김종훈이 나오지 않고 해외 동포는 물론 외국인 두뇌까지 포용하는 정치문화를 가꿔야 한다.

[김세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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