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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의 창] 은행들이여, 이제 음악은 멈췄다
덩치 키우기 경쟁이 자충수
씨티그룹 성장발판은 보수경영
기사입력 2009.03.05 17: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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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미국 최대 은행인 씨티그룹이 사실상 국유화됐다. 지속되는 자산 부실로 고갈되는 씨티그룹 자기자본을 메우기 위해 미국 정부는 정치적인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보유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함으로써 지분 37%를 소유하게 되었다. 작년 4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연간 -6.2% 속도로 축소됐다는 소식은 앞으로 씨티그룹 자산 부실 가속화를 의미하고, 완전 국유화는 시간 문제로 여겨진다.

씨티그룹의 수난은 아이러니가 짙다. 오늘날 거대 금융기업에 이르기까지 씨티그룹 전신인 뉴욕 씨티은행의 초기 성장 과정은 보수적 경영을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기회로 삼아 부실한 경쟁자들을 헐값으로 사들이고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온 은행이 바로 씨티그룹 전신이었다.

19세기 뉴욕이 금융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농업 대출에 의존하는 미국 내륙 금융제도를 뒷받침하는 은행 간 금융시장이 뉴욕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선진적인 영국 금융시장에서 차입한 자금을 자본이 빈약한 미국 내륙 지역으로 중계하는 업무가 뉴욕에서 이루어졌다. 씨티그룹 전신은 1812년에 설립된 뉴욕 내셔널 씨티뱅크로, 한동안 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계기는 1907년 금융위기다.

1907년 금융위기는 긴 호황을 구가한 미국 경제가 불황으로 꺾이는 단계에 어김없이 닥쳤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자본 시장이 이미 경색된 상태에 영국 금융시장 위축으로 뉴욕에서 자금이 빠지면서 마침내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중앙은행이 없었기에 금융위기는 급속도로 진전돼, 미국 지방은행들이 뉴욕시장에서 자금을 인출하는 대규모 뱅크런이 있었고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당시 쓰러진 은행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씨티은행에는1907년 금융위기가 도약 발판이 되었다. 다른 은행들이 무리하게 몸집 늘리기 경쟁을 할 때 씨티은행은 보수적 경영을 했고, 쓰러지는 은행들이 헐값으로 내다파는 자산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1906년 말 은행장 스틸만이 부행장 밴더립에게 보낸 서신이 유명한 서류로 남아 있고, 후세 학자에게는 소중한 연구자료다. 부행장 밴더립은 다른 은행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대출을 늘려 은행 자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스틸만 행장은 부행장을 말렸다. 이미 샌프란시스코 지진이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경영으로 화약고를 충분히 쌓아 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금융위기는 닥쳤고, 씨티은행은 다른 은행 자산을 휴지쪽지 값으로 사들였다. 대규모 금융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였다.

부행장 밴더립은 이 중요한 교훈을 잊지 않았다. 스틸만 후임으로 은행장이 된 밴더립은 10년 동안 씨티은행장으로 재임했고, 행장직 은퇴 후 미국 재무부 차관도 역임했다. 씨티그룹이 세계적인 금융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발판을 마련했다.

오늘날 금융업은 과연 스틸만 같은 은행장을 배출할 수 있을까? 금융업 변천은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다른 은행들이 몸집 늘리기식 자산 증식에 열중하는 상황에 홀로 보수 경영을 고집하면 십상 은행장 자리를 빼앗기기 일쑤다. 효율적인 경영과 주식 투자자 이익을 대변한다는 명목으로 금융회사 이사회도 은행 경영을 단기 수익에만 급급하게 만든다. 금융감독 당국의 묵시도 여기에 한몫한다. 급속도로 팽창하는 은행 자산은 결국 부실자산이 되고 최종 경쟁에서 몸집을 늘린 은행은 먹는 자가 되지 않고 먹이가 된다.

2007년 7월, 현 금융위기가 닥치기 한 달 전 척 프린스 당시 씨티그룹 회장은 FT와 인터뷰하면서 "음악이 계속 나오는 한 일어서서 춤을 출 수밖에 없다"고 경영철학을 밝혔다. 오늘날 씨티그룹이 겪고 있는 수난은 이 경영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예전 스틸만 은행장과는 대조적인 경영철학이다.이제 음악은 끝났다.
씨티그룹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만 달리해 되풀이될 것이다. 한국 시중은행들도 음악이 멈춘 상태에서 빈 의자가 몇 개인지 깨달을 것이다. 모두 빈 의자를 찾지는 못할 것이다.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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