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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의 창] 기축통화 갈림길에 선 유로화
기사입력 2009.01.29 16: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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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아이슬란드가 유동성 위기의 소용돌이에 말려 국가파산을 바라볼 무렵 유로화를 도입한 나라들은 안전한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폭풍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항구 밖에서 폭풍을 맞는 동유럽과 발트해 국가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통화 주권을 고집해온 영국도 파운드화 급락과 발맞춰 국내 여론이 유로존 가입을 두둔하고 나섰다. 출범 10주년을 맞는 유로화는 달러와 대결할 수 있는 예비 기축통화로서 그 모습을 선보이는 듯했다.

◆ 경기침체로 유로존 `흔들`

하지만 폭풍이 휩쓸고 간 유로존은 깊은 경기 침체로 접어들고 있고, 그동안 경기 호황의 밀물이 덮어 줬던 고질적 지역 불균형 문제가 경기 침체라는 썰물로 추하게 드러나고 있다. 유로존 변방인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는 금융회사 부실과 재정 상태 악화로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고 나라살림을 꾸려나가는 데 허덕이고 있다.

공짜가 없다는 냉철한 경제 현실은 유로존 가입에도 적용된다. 단일 통화에 가입한다는 것은 경제 주권 양보를 요구한다. 독립된 통화정책은 물론 재정정책도 엄격한 구속을 받는다. 재정정책 구속 없이는 단일 통화의 가치를 내부에서 침식시키기 때문이다.

한동안 정책의 구속은 피해가 되기는커녕 혜택을 줬다. 이탈리아를 예로 들어보자. 유로 출범 이전에 이탈리아 국채는 독일이 발급하는 국채보다 5~10% 추가 수익률을 지급해야 했다. 문제는 채무 불이행 위험도 있었지만 당시 이탈리아 화폐 단위 리라에 평가절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탈리아 경제 위기는 잘 알려진 각본을 따라 연출됐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찍어 판 다음, 채무 부담이 커지면 화폐가치를 끌어내리고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틀에 박힌 시나리오인 만큼 외국인 투자가들도 각본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고, 이탈리아 국채는 위험 금융자산으로 취급됐다. 신용도가 낮은 이탈리아 정부는 웃돈을 지급하지 않고는 국제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을 할 수 없었다.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높을수록 환율 평가절하 유혹은 더 생기고, 이를 간파한 투자자들은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악순환이 생겼다. 유로화 도입은 이런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고 유로 출범 이후 이탈리아는 5~10% 웃돈을 주고 조달하던 국채를 0.5~1% 웃돈만 주면 조달할 수 있었다. 정책의 구속을 통해 신용도를 높일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번 경제 위기는 구속의 어두운 면을 보인다. 부동산 경기에 힘입어 고속열차처럼 달리던 아일랜드 은행들은 부동산 경기와 함께 추락했고, 스페인도 그동안 건설 경기에 힘입어 유로존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창출한 성장 국가로서 경기 침체에 가장 취약한 나라였다. 하지만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나라는 그리스다. 이번주 그리스 국채 수익률은 독일 국채와 3% 정도 간격이 벌어졌다. 유로화를 도입했지만 채무 불이행 가능성을 시사하는 가격이다. 과감한 재정정책을 펴야 하는 시점에 유로화 재정정책 구속 때문에 모두 속수무책이다.

◆ 유로화 운명, 정치력에 달려

아일랜드를 비롯한 유로존 변방에서는 유로화에서 탈피하자는 여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유로화에서 탈피한다는 것은 프라이팬이 뜨겁다고 아궁이 불속으로 뛰어내리는 격이다. 유로화에서 탈피하면 국가신용과 재정적자의 악순환으로 채무 부담이 크게 뛸 것이 분명하다. 2001년 아르헨티나처럼 외채의 무게에 눌려 경제 파탄을 맞는 나라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재정 내실을 기하고 실질임금 억제로 경쟁력을 키우는 뼈를 깎는 노력만 남았다. 해당 국가 정부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지탱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유로 단일 통화란 단순한 경제 수단만은 아니었다. 유럽의 공동운명을 고집해온 정치인들의 비전은 미국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유럽 합중국 구축을 위한 장기 작업이었다. 달러에 맞설 수 있는 기축통화 기능을 꿈꾸던 유로도 이번 위기로 처음으로 갈림길에 놓여 있다.

[신현송 美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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