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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파란눈의 현각 스님에게 길을 묻다
돈·명예·집은 그림자 같은 것…한국인, 바깥세상서 벗어나야
기사입력 2012.09.14 17:02:45 | 최종수정 2012.09.14 17: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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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냐(Who are you)?"

"제 이름은 폴입니다."

"그건 네 어머니가 준 이름이다. 그것 받기 전에는 이름이 없었다. 너는 누구냐?"

"모르겠습니다."

"하버드 학생이 그것도 몰라. 이제 그것만 공부해라."

1990년 어느 날 미국 동부에서 포교를 하던 숭산 스님(1927~2004)은 파란 눈의 하버드대 대학원생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문답은 짧았지만 울림은 컸다. 한 청년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 하버드 학생이 현각 스님(본명 폴 뮌젠ㆍ48)이다. 그 유명한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1999년)의 주인공. 스물여덟의 꽃다운 나이에 한국에 와 머리를 깎고, 겨울ㆍ여름철이면 3개월씩 안거(安居ㆍ외출 금하고 수행만 하는 것)를 하던 구도자.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참선을 가르치고, 주지라는 소임까지 맡았던 외국인 스님.

그러던 그는 2008년 한국을 떠났고, 많은 이들이 당혹해했고 아쉬워했고, 그리워했다.

최근 모처럼 한국을 찾은 그를 서울 서초동 한 요가 학원에서 만났다. 그는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격정적이고, 지적이며 자유로운 면모가 엿보였다.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그는 "그림자에 불과한 내 인기와 명성, 개인사보다는 영적인 삶과 사회적 노력에 대화를 집중하자"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년부터 몇 년간 한국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완전히 끊고 싶다"며 "간간이 지인들을 만나러 한국에 올 때마다 강의나 행사 등에 절 끌어내려는 요청들로 구도생활을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작더라도 한국에서의 모든 공식 활동을 접겠다는 선언이다.

-요가 수련원에서 뵙다니 의외다. 어떻게 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10년 전에 요가를 잠깐 접했으나, 한국에서 스승을 찾지 못했다. 유럽에서 2년 반 전부터 다시 아슈탕가 요가 스승을 찾아 집중적으로 수련을 하게 됐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인도에서 공식 인정받은 요가 스승을 찾아 수련을 하고 있다. 아슈탕가 요가 수련은 S라인을 만들기 위한 `몸 요가`가 아니라 정신 수행을 위한 요가다. 유럽에서도 참선 그룹을 운영하고 있는데, 염불과 간화선, 아슈탕가 요가 수련을 주로 한다.

-간화선(화두를 의심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 수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그렇게 단순히 판단할 수 없다. 현대인들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 나쁜 기운을 받고 몸도 차츰 나빠진다. 그러면서 우울증과 소외감이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오로지 무(無)`자 화두를 물으면 자기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간화선과 요가 수련을 같이 하면 완벽하다.

-한국 선(禪)불교에 아슈탕가 요가 수련은 낯선 게 사실이다.

▶절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요가의 한 동작ㆍ자세다. 예수님이 히브루에서 왔듯, 참선 수행은 아슈탕가 요가 수련을 기본적으로 한다. 수천 년 전 부처님 당시에도 정신 세계 깊이를 따를 수가 없어 아슈탕가 요가에 의존한 측면이 있다. 옛날에는 농사 짓고 노동하면서 참선 화두를 들었다. 예수님도 많이 걸으셨다. 그런데 지금 수행자들은 육체노동을 할 기회가 적어졌다. 깨달음을 위해서는 조금 더 심화된 육체노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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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2008년 말 유럽으로 훌쩍 떠난 지 4년이 됐다. 근황은.

▶독일 뮌헨을 중심으로 선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 전체에 선불교 공부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뮌헨 말고 다른 지역에서도 선불교 위성그룹들이 생겨나고 있다. 노르웨이와 그리스 아테네에도 있는데, 특히 아테네에서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룹을 지도하고 있다.

-아테네는 고대 민주주의 발현지 아닌가.

▶그래서 한국 불교와 아테네의 만남은 매우 역사적인 일이긴 하다. 알다시피 아테네는 사회라는 `바깥` 세상에서 자유를 창조한 곳이 아닌가. 한국이나 미국 사회에서 보듯, `바깥 세상 자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사회도 민주주의를 이룩했지만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최고고, 이혼율이 높다. 바깥 세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지 못한다. 그런데 선(禪)불교는 우리 본연의 본성을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내적인 자유를 찾게 해준다. `내적 자유`를 추구하는 한국 선불교 수련법이 `바깥 자유`를 이룩한 고대 도시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 셈이다.

-유럽에서 한국 선불교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사실 한국 불교에 대해 잘 모른다. 유럽인들은 티베트 불교 명상법에 익숙하다. 티베트는 나라도, 이렇다 할 대기업도 없는데 유럽 작은 도시에까지 티베트 가르침이 파고들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부자들도, 대기업도 많지만 한국 불교 전통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유럽 사람들이 내게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난 25년 넘게 한국 불교를 공부한다고 말한다. 그럼 다음 질문이 뭔지 아는가. "한국 불교? 북한 불교인가요, 남한 불교인가요?"다. 교육받은 유럽인들조차 한국 문화 콘텐츠에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

-유럽은 `보시`(불가에 재물을 바치는 일) 개념이 없다고 들었다.

▶그렇다. 유럽에서는 역사적으로 종교기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 불교 명상법을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은 기존 종교 관습을 거부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여전히 한국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자유롭다. 양말을 신지 않아도,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한국에서처럼 `스님이 어떻게 그래요`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 좋다. 허허.

-유럽 다른 종교는 어떤 상황인가.

▶유럽은 최대 정신적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그리스 사람들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자살률도 올라가고 직업 없는 사람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기까지 한다. 종교에 대해 유럽 사람들은 옛날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는 사실 종교에서 많이 벗어났다. 종교에서 제일 벗어난 노르웨이는 친환경과 여성인권, 동성애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정신이 넓다. 오히려 종교를 가지면 정신이 좁아진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너와 나를 구분하는 마음이 커진다.

-종교에서 벗어난 나라들이 더 포용적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종교는 실수이자 그림자다. 그림자는 진정한 현실이 아니다. 늘 변한다. 자, 손 모양에 따라 그림자가 바뀌지 않나. 그림자는 좋은 모양, 나쁜 모양, 네모, 세모 등 가지각색이다.

-불교는 어떤 종교인가.

▶불교는 종교보다는 나의 마음을 찾아줄 수 있는 기술이다.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나는 누구인가`를 바로 볼 수 있는 `도(道)`다. 아슈탕가 요가를 수련하는 것처럼. 효과는 바로 그 자리에서 느낄 수 있다.

-출가한 지 20년이 흘렀는데 `나`를 찾았나.

▶(종이컵에 든 녹차를 들어 보이며) 이 녹차는 시원하고 참 맛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웃으면서) 이 따뜻한 물이 목에 넘어가는 찰나, 바로 그 순간 그 자체가 부처라는 마음이든, 진리이든, 참나(眞我)이든 이 모든 게 오직 말뿐이므로 완벽한 답이 못 된다. 이 차를 마시는 바로 그 순간 그 자리는 그 자체가 나다. 찰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다.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는 순간, 이것만이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찰나, 찰나, 찰나, 바로 여기에 진실이 있다.

-숭산 스님에게 받은 화두가 있나.

▶솔직히 말하면 존경하는 나의 스승이신 숭산 스님은 내게 화두를 줄 수 없다. 진정한 화두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기 때문에 불문(佛門)에 들어왔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 왜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의 조상인 독일 사람들은 왜 600만 유대인들을 학살했는가. 나쁜 사람들은 오래 살고 착한 사람들은 고통 속에 살고 일찍 죽는가. 그래서 오로지 생각만 하는 불교식 형식 화두는 참다운 화두가 아니다. 화두의 죽은 형식일 뿐이다. 예수가 마지막에 한 말이 뭔지 아나. `아버지 왜 나를 버리십니까`다. `왜` `왜` 이것이 참된 화두다. 예수님도 화두를 들고 가셨다. 지금 이 순간 지인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한다. 곧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친구는 궁금할 것이다. 돌아가시면 어머니가 어디로 가시나? 그곳에서 행복하실까. 사람들은 궁금하다. 왜 죽고, 고통받는지. 신문을 열면 다 화두다. 왜 일곱 살 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는지, 왜 이 세상이 상처투성이인지. 왜? 왜? 왜?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게 진정한 화두다.

-한국 불교가 최근 도박 사태로 홍역을 치렀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서산대사 말씀은 "배고프고 추울 때만 도심 생긴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멘붕`이 유행어가 됐고, 자살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너도나도 살기 어렵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바깥 세상을 위해 살았다. 돈과 명예, 집, 좋은 차, 여행. 그러나 그림자 세상은 계속 변한다. (기자를 가리키며) 자 한번 일어나서 팔을 뻗고 그 자리에서 뱅뱅 돌아봐라. 더 빨리. 어지럽고 토할 것 같지 않나. 그런데 돌고 있는 사람만 돌고 있지, 세상은 그대로다. 마음은 어떤가. 한번도 변하지 않고, 오지 않고, 태어나지도 않고,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 이 무한한 세상에 의지해야 흔들지 않는다. 불교의 핵심은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유럽에서 더 공부할 계획이다. 책을 낼 계획은 없다. 내년부터 한국 내에서 포교 활동을 끊고 유럽에 집중하고 싶다. 왔다갔다하는 생활을 끊고 싶다. 한국에 올 때마다 강의나 사찰 행사에 절 끌어내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것 기대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유럽에서 쓸쓸하게 방랑자로 살고 싶다. 다만 유럽 제자들을 위한 염불선 음반을 낼 가능성은 있다. 내가 포교하러 어디 다른 곳에 갈 때, 유럽 제자들은 간화선을 공부하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전문적인 염불 음반을 낼까 계획 중이다.

■ 현각스님은 누구
예일대ㆍ하버드대학원 출신…유럽서 한국 선불교 포교

1964년 미국 뉴저지에서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학원 재학 중 화계사 조실 숭산 스님의 법회를 듣고 1990년 11월 한국에 온 일은 아직까지 전설로 전해진다. 숭산의 법문집 `선의 나침반` `오직 모를 뿐`을 영어로 번역했고, 1999년 출가 사연을 적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출간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책은 8년 전 절판돼 시중에서 살 수 없다.

2008년 말 한국을 떠난 뒤 독일 뮌헨에서 한국 선불교를 알리고 있다. 최근 잠깐 한국을 방문한 스님은 "한국은 애인처럼 사랑하는 곳이지만 너무 가까이하면 불과 기름처럼 `붕` 터진다"고 말했다.


또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혜민스님에 대해 넌지시 묻자 "(그런 일 해줘) 고맙고 또 고맙다"고 말했다.

[글 / 사진 =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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