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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에 우유를 공급한 ‘낙산(酪山)’
기사입력 2008.11.21 15:52:27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조선시대 우유 조달청 자리 ‘낙산(酪山)’

낙산의 유래를 알면 낙산 데이트 코스가 더 재미있을 수 있다.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낙산을 걸을 때는 우유를 한 잔 마시자. 몸에도 좋고 잘난 척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조선시대 때 우유는 임금님도 함부로 못 마시는 귀중한 음료였다. 젖소가 없었고 옛날, 소가 새끼를 낳으면 그때서야 우유를 짰다. 더욱이 우유는 신선도가 생명이니 먼 곳에서 가져올 수도 없다. 그래서 사대문 밖의 경기도 각 고을에만 할당량을 정해 우유를 거둬 들였다.

조선 후기 관청의 업무를 적어 놓은 문헌으로 육전조례(六典條例)가 있는데 궁궐 살림을 담당하는 부서인 사복시 아래에 타락색(駝酪色)이라는 관청이 있다. 타락(駝酪)은 우유의 옛 한자어로 돌궐 말이 어원이다.

우유를 조달하는 관청인 타락색이 위치한 곳이 지금의 동대문 부근이다. 신동국여지승람에 타락산(駝酪山)은 도성 안 동쪽에 있다고 했는데 타락산이라는 이름도 우유 조달관청인 ‘타락색’이 위치하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지금의 낙산이 바로 타락산이다.

일부에서는 낙타의 등을 닮아 ‘낙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데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우유 낙(酪)자 대신에 낙타 낙(駱)자를 써서 낙산(駱山)이라고 하는 것은 유래를 모르는 무식의 결과라 했다.

낙산에 우유 조달청이 자리잡은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명종 때 우유를 조달하는 관청인 유우소(乳牛所)가 있다고 했고, 고려 우왕은 유우소를 지나다 수척해진 소를 보고 우유 진상을 금지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가 망한 후 조선이 들어서면서 세종 20년에 우유소를 타락색으로 명칭을 바꾼다. 그리고 그 위치를 현재의 낙산에 두었다.

왕도 마음대로 못 마신 보양식 ‘우유’

상상의 나래를 펴면 낙산에서 마시는 우유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우유는 왕도 아무 때나 마실 수 없었다. 특별한 날이나 몸이 아플 때 먹는 보양식이었다. 조정의 대신들도 동짓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임금이 보내 준 우유를 맛 볼 수 있었다. 보통 해마다 10월 그믐부터 정월까지 내의원에서 우유를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눠 주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예전 우유를 주로 타락죽(駝酪粥), 다시 말해 우유 죽의 원료로 사용한다고 했다. 찹쌀에 우유를 넣고 끓인 죽이다. 임금이 병이 나면 궁중 내의원에서 끓여 올리거나 신하가 아플 때 왕의 명령으로 타락죽을 하사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인종 1년에 신하들이 “주상의 얼굴 빛이 초췌하고 잠을 주무시지 못하며 심기가 답답하고 열이 나서 때때로 놀라고 두근거리신다고 하니, 다른 의약은 효험이 없고 타락은 조금 차서 심열을 제거할 수 있으니 타락을 드시라”고 청하는 장면이 있다.

조선 숙종 때 문인인 김창업(金昌業)이 사신으로 청나라를 다녀 와서 쓴 연행일기(燕行日記)에는 조선의 사신들이 자금성에 도착해 황제의 알현을 기다리는 동안 타락차(駝酪茶)를 큰 병으로 하나 보내 왔으나 사신들이 마시려 하지 않았는데 나는 일찍이 그 맛이 좋음을 알았기 때문에 연거푸 두 잔이나 마셨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들 중에서도 우유 맛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우유 구하기가 힘드니까 그만큼 폐단도 컸는지 우유 진상을 중지하라는 기록도 자주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46년에는 내의원에서 올리는 타락죽을 중지하고 어미 소와 송아지도 함께 놓아주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우유를 제 때 공급하지 못한 관리가 혼쭐이 나는 기록도 있다. 승정원 일기에 고종 38년, 타락죽에 들어갈 우유를 진상하지 못한 담당 관리를 면직하고 관련자를 모두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에, 고종이 이번에는 특별히 용서한다는 사면조치가 보인다.

[명준호 프리랜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55호(08.12.01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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