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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의 창] 위기의 영국식 금융감독제도
기사입력 2008.09.04 17: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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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태풍의 계절이다. 이번주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구스타프는 3년 전 카트리나를 연상케 했다. 수천 ㎞ 떨어진 로키산맥 휴양지 잭슨홀에서 열린 중앙은행 회의에서는 다른 종류의 태풍이 거론됐다. 금융위기의 태풍이 닥친 지 1년을 넘기면서 참석자들은 세계경제가 긴 태풍의 계절을 맞고 있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이번 잭슨홀 모임에서 의미 있었던 것은 미국 통화정책의 조용한 혁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개회 연설은 금융안정에 관한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했고 연준의 금융감독 역할 확대를 주장했다. 수년간 통화정책과 금융감독의 분리를 주장해온 버냉키가 종전의 태도를 번복하는 자리였다. 프린스턴대 교수 시절부터 그는 소비자물가에 중점을 둔 `인플레션 타게팅` 통화정책을 주장했고, 연준 의장이 된 후 인플레이션 타게팅 이행을 위해 꾸준히 일해왔다. 그의 잭슨홀 연설은 종전 주장을 포기하는 선언으로 의미가 깊었고, 인플레이션 타게팅이 미국 통화정책에서 사라지는 날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인플레이션 타게팅도 학설의 유행에 좌우되는 정책이었다. 지금의 금융위기는 인플레이션 타게팅의 한계를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 연준은 은행감독권을 버리지 않았기에 쉽게 정책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타게팅을 제도화한 나라들이다. 이들은 법 개정과 제도 개편으로 정책의 경직을 불러왔다.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은 1997년 영란은행 독립을 인플레이션 타게팅 체제에 묶었고 종전의 은행감독권은 신설된 금융감독원(FSA)에 부여했다. 영란은행 은행감독국 직원은 금융감독원으로 대거 옮겨갔다. 개편 초기에는 상호 협조에 문제가 없었다. 제도적 장치로 양해각서가 있었지만, 이보다는 수년간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다른 건물에서 일한다는 기분으로 협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관이란 시간을 두고 자체 기업문화를 구축한다. 중앙은행에서 벗어난 감독기구는 소비자보호 업무나 영업행위 문제에 치중하게 되고, 통화정책과 관련된 유동성 문제나 금융제도 안정성 문제는 자연히 등한시하게 된다. 출신 전공도 경제학에서 법학이나 회계학으로 옮겨간다. 금융감독원에서 성공하는 인물들은 새로운 기업문화에 부합한 사람들이고, 영란은행 출신 고위급 간부들은 하나 둘씩 다 떠났다. 제도개편 10주년이 되던 2007년의 영란은행은 과거 금융감독 역할을 기억하지 못하는 중앙은행이 되었고, 금융감독원은 금융제도 안정성 분석 역량이 부족한 감독기구가 되었다.

바로 이때 금융위기의 첫 태풍이 닥쳤다. 은행들은 유동성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대출을 거부하고 자체 생존에 급급했다. 노던록 모기지 은행은 유동성 위기에 빠져 결국 국유화됐다. 노던록은 `북부 바위`라는 건실한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단기자금에 의존하는 은행이었다. 바젤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충분했지만 유동성을 고려하지 않은 경영방식을 추구했다. 부동산 거품이 터진 영국은 지금 깊은 경기침체에 빠지고 있다.

유동성 위기는 1~2초를 다투는 다급한 상황인데도 영란은행과 금융감독원의 협조는 미흡했다. 노던록의 취약성을 인식하지 못한 금융감독원의 잘못이 크지만 금융 안정 정책을 소홀히 한 영란은행도 문책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위기가 닥치는 순간 두 기관의 양해각서는 종이쪽지에 불과했다. 노던록 위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정보교환만으로는 실질적인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의 모범으로 여겨졌던 영국 금융감독제도의 위신은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영국 당국은 시급한 제도 보강작업에 착수했다.

영국의 제도를 모형으로 삼고 제도 개편을 한 나라들이 많다. 이 중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한국의 정책당국은 노던록 사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는 지금 태풍의 계절이다. 태풍준비는 미리 하는 것이 현명하다.

[신현송 美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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