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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의 창] 얼굴 바꿔 나타나는 외환위기
기사입력 2008.10.09 17: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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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조지 루카스 감독이 만든 스타워즈 영화 시리즈 중 1980년에 만들어진 `제국의 역습`이라는 작품이 있다. 지금은 제5편으로 재분류됐지만 1970년대에 스타워즈와 함께 자란 세대에게는 2편으로 통하는 영화다.

선과 악, 권력과 유혹을 다룬 가장 어두운 작품이다. 영화 중에 주인공이 꿈속에서 검도 격투 끝에 숙적 다스 베이더를 넘어뜨린 뒤 가면을 벗기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정작 가면을 벗기자 그 뒤에는 바로 자기 얼굴이 나온다. 자기 스스로가 숙적이라는 의미다.

외환위기도 비슷하다.

유동성 위기를 동반한 외환위기 배경에는 항상 국내 기관들의 뒤늦은 환헤지 거래가 있다. 달러 강세로 달러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달러 수요는 급증하고, 달러값을 더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교과서에 나오는 하향 수요 곡선과는 달리 환헤지에서 비롯되는 달러 수요는 상향 곡선이다. 달러값이 오를수록 달러 수요는 증가한다.

외환위기란 검은 투기세력의 탐욕에서 비롯되는 것보다는 국내 기관의 절망에서 비롯된다. 넘어뜨려야 할 숙적 `다스 베이더`는 바로 나다.

원칙은 영원하지만 주인공은 바뀐다. 97년 태국 외환위기의 주인공은 달러 부채를 안고 부동산업자에게 대출한 금융회사들이었다. 인도네시아는 달러 외채로 영업하던 독재자 수하르토 소유 계열 대기업들이었다. 97년 당시 한국은 달러 부채를 진 종금사와 대기업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러면 오늘의 한국 외환시장 고통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해답을 찾기 위해 우선 교과서를 열어보자. 국제 경제 교과서에는 달러 환율이 올라가면 수입업자는 피해를 보지만 수출업자는 혜택을 본다고 돼 있다. 달러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수출업자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수출을 통한 수익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과는 다르다. 달러 강세로 현재 피해를 보는 기업들은 바로 수출업자들이다. 달러 가치 하락에 대비해서 키코(KIKO) 환헤지를 한 수출업자들은 달러 상승에 고통을 겪고 달러 가뭄 속에 귀한 달러만 찾고 있다. 교과서와는 달리 고환율은 수입업자나 수출업자 모두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 고환율은 수출업자의 보약이 아니라 독약이 된 셈이다.

키코란 기업과 은행간 돈내기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은행이 기업에 돈을 주고, 올라가면 기업이 은행에 돈을 준다. 더구나 일정한 액수의 내기가 아니라 달러가치 변동폭과 함께 돈내기 규모가 커진다. 기업의 키코 부채는 장부에 나타나지 않는 부외 달러 부채로서 원화로 환산하면 달러가치의 제곱으로 불어나는 부채다. 즉 달러 부채가 증가하면서 환율도 악화되어 고통이 제곱으로 증폭되는 부채다.

기업과 은행간 돈내기라면 기업이 피해보는 대신 은행들은 이득을 봤나. 그렇지도 않다. 은행들은 환위험 헤지를 위해 돌아서서 외국 은행들에 달러를 공매도하거나 오히려 달러를 빌렸다. 국내 은행들도 달러 부채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과 은행들 모두 달러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달러가치 상승이란 독약과 같다. 불어나는 달러 부채를 막기 위해 달러 수요는 급증하고, 환율만 더 부추긴다. 수렁에 빠진 여러 사람이 각자 무질서하게 빠져나오려면 다른 사람들만 끌어당기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안간 힘을 써도 아무도 헤어나지 못한다.

환헤지란 나에게는 위험 부담을 덜어주는 수단이지만 남에게는 피해가 된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외부효과 일종이다. 외환위기란 검은 투기세력의 탐욕보다는 국내 기관의 절망에서 비롯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는 키코와 은행 부문 달러 부채를 파악해서 만기까지 연명할 수 있도록 달러 유동성 공급을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다.

우선 급한 불을 끈 후 사태 규명을 해야 한다.
외환위기란 시대를 거듭하면서 모습을 교묘히 바꾼다. 어제의 위기만 막으면 소용 없다. 내일의 위기를 막아야 한다.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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