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트 갭 이미지이메일 전송갭 이미지리스트
섹션 타이틀 이미지
[매경의 창] 글래머 금융회사 부러워 말자
기사입력 2009.08.27 17:08:28
보내기
기사 나도 한마디

 기사의 0번째 이미지
금융의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가? 어처구니없는 질문인 듯하지만 바람직한 금융제도 설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

금융의 주된 기능은 자금이 필요한 자와 자금을 제공하는 자 사이에서 둘을 이어주는 중개 업무다. 자금이 필요한 당사자는 기업일 수도 있고, 주택 구입을 원하는 가계일 수도 있다. 혹은 재정 적자를 메우려는 정부가 될 수도 있다. 자금을 맡기는 당사자는 저축하는 국민, 즉 가계 부문이다.

효율적인 금융은 실물경제를 활성화하고, 위험을 분산시키고,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금융 중개는 경제를 이끄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금융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금융이 마비되는 금융위기 때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중개의 효율성을 따질 필요가 있다. 유통업 효율성을 따질 때 흔히 중개인이 몇 명 끼었는지 따진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농민이 재배한 채소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중간 상인 몇 명 손을 거쳤는지를 묻듯이, 금융도 중개 사슬의 길이를 따질 필요가 있다. 재래식 은행 업무는 가계 예금을 받아 직접 대출하는 짧은 유통 구조다. 지난달 본 칼럼에서 언급한 커버드 본드도 마찬가지다. 마치 농민이 채소를 직접 운송해서 파는 직매장과 같다.

반면 증권화를 기반으로 한 미국 유통구조는 길고 복잡하다. 은행이 떼어 판 대출자산은 주택저당채권(MBS)으로 둔갑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MBS를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 또는 복잡한 자산담보부증권(CDO)으로 둔갑한다. 이들 증권을 사들이는 월가 금융회사들은 상업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대출을 한 상업은행은 어음과 같은 단기 부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단계마다 중개인들은 수수료를 챙기고, 증권이 불투명할수록 수수료가 높다. 주택 구입 목적으로 국민 한 명이 이웃에게서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수십 차례 거래와 중개인 수수료를 떼인다. 하물며 농산물 유통구조도 논란이 되는데, 금융제도 효율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한때 미국 금융제도의 긴 중개 사슬을 정당화하는 설(說)로는 위험을 분산시키고, 효율적인 자원 배치를 도모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에서 허상으로 폭로됐다. 미국 증권화 제도는 위험을 분산시키기는커녕 과한 레버리지를 통해 위험을 확대시켰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는커녕 서브프라임 대출과 같은 막대한 자원 낭비를 낳았다.

국민이 입은 피해는 수수료만으로 헤아릴 수 없다. 국민은 중개인에게 세 번 돈을 낸 셈이다. 한 번은 비싼 수수료를 냈고, 두 번째는 중개인들이 불러온 금융위기 때문에 대가를 치렀다. 이것만으로도 억울한데, 중개인의 부실을 메우기 위해 세금까지 내야 했다. 삼중으로 대가를 치른 셈이다.

미국 월가 금융회사들은 국민 세금으로 손실은 국유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했다는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호황 때는 내가 잘해서 번 돈이고, 위기 때 발생한 손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민 혈세로 메운다는 얘기다. 꿩 먹고 알 먹기 식이다. 한국은 다행히 큰 손실을 면했지만 꿩 먹고 알 먹기 식 금융경영에 대한 위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예로 국가 운명을 금융산업과 같이한 아이슬란드 같은 나라는 사기업 손실이 결국 국가파탄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다시 한 번 묻자. 금융의 사회적 가치는 뭔가? 금융의 가치는 실물경제에서 기원한다. 금융이란 실물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다. 그러나 윤활유만으로 부를 창출할 수 없다.

다행히 한국은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다.
한국은 골드만삭스가 상징하는 글래머식 금융업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평범한 외모를 다행으로 생각하고 금융제도에 내실을 기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내실은 글래머를 항상 이긴다.

[신현송 美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를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만나세요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갭 이미지 이메일 전송 갭 이미지 리스트


 


notice

0번째 공지사항 배너 이미지

0 번째 이미지1 번째 이미지2 번째 이미지


기획/연재

기획/연재 더보기

분야별 주요뉴스

포토

포토 더보기

2012 대한민국 우수기업